소설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 「구운몽」은 연로하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매일 밤 엮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저도 당신께 바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문 두드립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나'이야기입니다. ”
장편 소설 예나 이야기의 화자는 ‘예나’의 오빠다. 예나를 입양한 집안의 아들인 ‘나’(오빠)의 시선은 줄곧 여동생의 삶을 뒤쫓으며 예나의 에피소드들을 가감 없이 서술한다. 스토리 위주의 서사가 나열되며 소설의 중반 이후를 차지하는 ‘편지’들 역시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면, 이 소설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국면이 있다. 저자는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에 탄탄한 의미의 구조를 곁들였다. 예나와 관련된 등장인물 모두는 가족이다. 이는 사랑의 시작이 ‘가정’임을 의미한다.
예나는 친부모와 양부모 사이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고통과 행복을 반복해 경험한다. 단절의 끝에서 예나는 운명과도 같은 죽음과 조우한다. 예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예나의 본성은 처음부터 사랑과 소통을 향해 있었으며 소설의 화자인 ‘나’는 그녀를 통해 우주적 합일(合一)의 의미를 깨닫는다. 사랑은 단절의 고통을 극복하는 힘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이다.
가정에서 시작된 사랑의 샘물이 어떻게 시냇물이 되고 지구를 돌아 대양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나아가 궁극의 존재를 만나기 위해 읊조리는 예나의 고백들은 우리들을 피안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영혼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하여 준다. 이쯤해서, 저자는 이 땅을 디디고 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다시 말하는 듯하다.
“ 예전, 김만중은 연로하신 어머니께 바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구운몽」을 지었습니다.
이제 저도 당신께 바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문 두드립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순수한 세계의 회복을 고대하며 매일 밤 엮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의미소들의 구조
서평 -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명예교수 박동규
예나를 중심으로 한 나의 관찰기와 사랑의 완성
한 인간의 운명을 축으로 하여 넓은 세상 안의 긴 유전을 보여주고 있다.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사랑의 진실함과 영원함을 갈구하는 이야기가 편지글과 고백의 일인칭으로 잘 서술되어 있다.
이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완전한 사랑의 꿈은 작가가 ‘맺음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가장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사랑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인간의 영원한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입양이라는 삶의 굴곡과 가족 간의 이별, 이민이라는 또 다른 삶의 둥지에 대한 적응과 문화적 격차에서 생기는 갈등 등은 흔한 것 같아도 이를 겪어내는 개체적 인간의 삶은 어떤 양식으로든 상처의 아픈 기억들을 남기게 된다. 이를 통해서 새로운 삶의 길을 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를 토대로 하여 입양, 이민, 낳은 부모와 키운 부모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융합하여 완전한 사랑을 꿈꾸고 있는 점은 작가의 개성적 독특한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평범하게 메일을 주고받으며 일상의 생활 안에서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를 서술해가지만 작가의 감추어진 마음 세계 속에서는 그가 어떤 꿈을 엮어가고 있는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은 혼돈으로 범벅된 인간의 심정적 세계 안에 구원이라는 밧줄을 내려던진다. 그런 후에 건져 올리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묻어있는데 시종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또 잔잔한 목소리와 삶의 진실한 마음의 고백은 무척 감동적이라 하겠다.
나’와 의붓 여동생과의 메일을 통한 현실적 세계와 ‘나’라는 주인공이 꿈꾸는 주변과 가족관계의 역학이 서로 어울려 상처가 아물어 가는 과정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사랑과 꿈을 추구해 나가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